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에 대해서
루이비통 브랜드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명품 중 가장 명품이라 하는데요.
국내에서도 명품백에 입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처음 맞이하는 게 루이비통 브랜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매년 상위에 랭크되고 있으며,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는 가장 높은 브랜드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 세계 74개국에 총 465여 개 매장과 18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되어 왔는지 루이비통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루이비통 루이뷔통 창업주와 루이비통의 탄생
루이비통은 가방, 의류, 주얼리, 신발, 선글라스, 시계등을 제작 및 판매하는 프랑스의 명품 패션 브랜드입니다. 창업자 루이뷔통 이름에서 유래된 루이비통은 185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여행가방 전문매장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는 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철도 및 수로 교통의 확산으로 인해 여행인구가 증가했던 사회적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창업주 루이비통은 1821년 8월 4일에 프랑스 동부 안쉐 마을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목공소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무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파리로 가서 가장 유명했던 가방 제조 전문가인 무슈 마레샬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한 루이비통은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커로 소문났으며 결국 외제니 황후의 전담 패커가 되었습니다.
1854년 루이비통은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외제니 황후의 후원으로 뤼뇌브 까푸신느 4번가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매장이자 포장 전문가게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루이비통 브랜드의 시작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대
그 당시 프랑스 자본주의로 성장으로 인해 발전한 휴양문화는 루이비통에게 큰 행운을 주었습니다.
당시 여행용 트렁크들은 여러 개를 쌓기 어려운 둥근 형태였고 매우 무거웠기 때문에 공간이 좁은 철도나 배로 싣기에는 무척 불편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루이비통은 1858년 평평한 바닥에 사각형 모양의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만들었습니다.
루이비통은 어릴 적 배웠던 목공일과 패커의 경험으로 캔버스 천에 풀을 먹여 방수 처리한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사용해 물건을 적재할 수 있고 무게도 가벽게 한 사각형 트렁크를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이 트렁크는 당시 프랑스 황후뿐 아니라 윈저공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등 유명한 고객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트렁크 가방의 성공으로 사업 확장이 필요하게 된 루이비통은 1859년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아니에르 첫 번째 공방을 개점하였다.
이 공방은 현재까지도 남아 있어 영국작가 데미안 허스트,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 등 유명 인사의 트렁크와 FIFA 월드컵 트로피 트렁크 등 전 세계 고객의 특별 주문을 받아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합니다.
1888년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가 큰 인기를 얻자 모조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루이비통은 모조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다미엔 캔버스를 개발해 제품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892년 창업자 루이비통이 사망하게 되면서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이 경영권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미에 캔버스 개발에도 불구하고 모조품이 계속해서 생겨나기 시작하자 1896년 모노그램 캔버스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루이비통은 1885년 영국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 첫 번째 해외 매장을 오픈하였고 이후 뉴욕, 워싱턴, 봄베이 등에 매장을 확장했다. 1914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세운 7층짜리 루이비통은 매장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용품 전문 매장이었습니다.
1892년에는 트렁크 여행가방 이외에 새로운 형태의 핸드백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드러운 질감으로 만들어 접을 수 있게 만든 스티머 백과 둥근 형태의 여행가방인 키폴백, 바닥의 폭이 평평하게 넓고 위는 둥근형태로 수납공간이 많은 손가방인 스피디백, 샴페인 병을 수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주머니 형태의 가방인 노에 백 등 차례로 선보이며 가방라인을 확장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행의 수단이 기차에서 자동차로 바뀌게 시작하게 되면서 루이뷔통은 트렁크보다는 작고 가벼우며 실용적인 가방을 개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빠삐용 백과 에삐라인을 선보였고 1978년 일본을 시작으로 태국과 대만, 대한민국과 아시아 시작에서도 적극적으로 매장을 확장했다.
1984년 루이비통은 뉴욕과 파리 주식 시장에 상장했으나 가족경영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1987년 샴페인과 코냑제조업체인 모에 헤네시와 합병하여 거대 럭셔리 기업인 LVMH 그룹을 설립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남성 비스니스 맨을 타깃으로 한 소가죽 소재인 타이가 가죽과 여행가방 페가세등을 신제품을 추가로 론칭했으며 베이징에 매장을 열고 중국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제2의 전성기, 마크 제이콥스 합류
1997년 루이비통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게 된 마크 제이콥스는 브랜드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젊은 이미지를 가미하여 의류와 신발, 주얼리 컬렉션등으로 상품영역을 확장했습니다.
1998년에는 모노그램 캔버스를 재해석하여 반짝거리는 에나멜가죽에 모노그램 패턴을 넣은 모노그램 베르니를 론칭했으며, 여성의류와 컬렉션과 남성의류 패션쇼, 2001년에는 주얼리 컬렉션과 차례로 시계컬렉션을 열었으며 태닝에 용이한 유타가죽을 개발하였습니다.
2001년 S/S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모노그램 그라피티는 1980년대의 다운타운적인 펑크와 팝 센스를 믹스한 룩의 개척자로 알려진 뉴욕의 패션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 협업을 통해 개발하였습니다. 전통을 대표하는 캔버스 위에 강렬한 그라피티를 역동적으로 활용한 굵은 형광색 그라피티를 채워 젊은 이미지를 표현한 모노그램 그라피티 한정판을 출시하였습니다.
그동안 루이비통의 연령층이 다소 높고 젊은 층이 쓰기에 생각나는 브랜드가 아니었지만 이러한 시도들로 인하여 많은 젊은 층들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2003년에는 일본의 네오 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협업을 통해 모노그램을 컬러풀한 93가지 색으로 표현한 새로운 모노그램 멀티컬러를 론칭했습니다.
2004년에는 루이비통 창립 15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 샹젤리제 매장을 일 년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재오픈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다미에 아주르 캔버스, 2007년에는 많은 양의 소지품을 수납할 수 있는 역사다리 꼴 가방인 네퍼풀, 2008년에는 다미엔 그라피티 캔버스, 2009년에는 맞춤형 특별 주문 서비스인 몽 모노그램, 2013년에는 제피르를 론칭했습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에 대하여
오늘 루이비통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고 시대마다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약 150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변화를 통하여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명품 중에 명품으로
올라선 거 같습니다.
루이비통 첫 시작이 여행용 가방으로 시작했다는 사실과 루이뷔통 하면 유명한 문양인 다미엔 캔버스, 모노그램 캔버스가 모조품과 차별화를 두기 시작했다는 부분이 신기했던 거 같습니다.
모조품이 나온다는 것이 좋지는 않지만, 또 모조품과 구분하기 위해 더 좋은 제품이 나왔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거 같습니다.
오늘은 루이비통에 대한 역사와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루이비통만의 브랜드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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