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품 에르메스 브랜드
프랑스 명품 브랜드! 하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시나요?
사실 프랑스 하면 여러 명품 브랜드가 생각나지만 그중 에르메스 브랜드가 생각이 납니다.
최근 에르메스의 시가 총액이 2000억 유로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시가 총액 기준으로는 전 유럽에서 여덟 번째로 큰 기업이고 기업 중에서는 LVMH 다음 규모입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구입한다고 하는데요.
세계명품 브랜드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가운데서도 가장 매출이 높은 에르메스에 대해서
오늘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에르메스의 기원
에르메스는 가방, 의류, 스카프, 신발, 시계, 향수 등을 제작 판매하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프랑스 파리에서 안장과 마구용품 사업을 시작하면서 탄생한 에르메스는 승마를 즐기는 왕족, 귀족 사이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1900년 초반부터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와 손자인 아돌프 에르메스,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사업에 합류하여 여행용 가방, 실크제품 등으로 제품항목을 넓혀가면서 장인이 만들어내는 높은 품질의 브랜드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르메스의 특이한 점으로는 다른 명품 브랜드들이 주식회사에 소속된 것과 달리 현재까지 6대에 걸쳐 가족기업의 형태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탄생
에르메스의 설립자 티에리 에르메스는 1801년 프로이센에 있는 크레펠드 지역에서 프랑스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크레펠드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리넨, 견직물 산업등이 발달한 지역이었습니다.
티에리 에르메스가 태어날 당시에 크레펠드 지역은 나폴레옹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티에리 에르메스의 부모는 숙박업에 종사하였는데 티에리 에르메스가 15세 당시에 부모임을 여의고 1821년 프랑스로 건너왔다고 합니다.
이후 1837년에 티에리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마들렌 광장에서 말의 안장과 마구용품을 파는 마구상을 냈습니다. 자금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던 티에리 에르메스는 이를 이용하여 첫 사업을 시작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따 에르메스로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르메스 브랜드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사업의 확장
1837년에 티에리 에르메스에 의해 설립된 에르메스는 품질에 대한 헌신, 청렴함으로 빠른 시간에 유명해질 수 있었습니다. 1867년에 세계 각국의 새로운 공산품을 소개하는 축제형태의 산업 박람회였던 만국박람회가 파리에서 열렸는데 그때 에르메스는 자신의 제품을 가지고 참가하여 1등 상을 수상하며 에르메스의 마구의 우수한 품질과 견고함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나폴레옹 3세와 같은 왕족도 에르메스의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1831년에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태어났는데요.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1878년 아버지인 티에리 에르메스가 세상을 떠나자 기업을 계승하였고 같은 해에 또 만국박람회에서 1등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 인근에 위치한 파리의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에 마구를 취급하는 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르메스는 전 세계의 왕실, 귀족에게 안장과 마구용품을 납품하는 동시에,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여행용품과 가방용품과 같인 새로운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후 카우보이의 새틀백에 영감을 얻어 개발한 '오뜨 아크루아'백을 개발하였는데요. 이는 훗날 유명한 에르메스 버킨백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에르메스 로고 탄생하다
1902년 에르메스 형제들이 사업에 투입되면서 '에르메스 형제'라는 이름으로 3세대 경영에 들어갔습니다.
이 시기에 유럽, 북아프리카, 러시아, 미주 그리고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상류층을 고객으로 확보하였습니다.
1914년 에르메스 형제는 80여 명의 마구 직공들을 고용할 정도로 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당시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기병의 물품을 만들 가죽을 구입하는 임무를 가지고 미국으로 갔는데, 이미 대량생산의 시대에 집입할 미국에서 교통수단의 상당한 발전과 그에 힘입어 여행가방 산업이 팽창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때까지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던 지퍼잠금장치를 발견하였습니다.
1918년 에밀 모리스는 전쟁 이후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발견한 지퍼에 대해 프랑스 내 전매권을 획득하여 가죽제품과 패션 제품에 과감하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에르메스의 기술인 새들 스티치를 활용하여 핸드백과 여행가방에도 적용하여 고급스러운 가죽 제품을 만들었고 여행, 스포츠, 자동차 용품, 의류, 실크 스카프, 벨트, 장갑, 보석, 팔찌, 시계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1924년에 미국에 진출하였으며, 1929년에는 에르메스의 여성복 라인을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대공황으로 전 세계가 경기 침체되 있던 1930년대 에르메스는 단순한 디자인들의 제품들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켈리백으로 알려진 핸드백과 가죽 어젠다, 삭 아데페쉐, 남성용 브리프 케이스, 샹당크르, 승마복등 훗날 에르메스의 대표제품들이 193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1937년 에르메스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에 그동안 에밀 모리스가 수집해 온 그림, 서적, 예술품 들으러 에르메스 박물관을 열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이 박물관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번 저도 가보고 싶은 박물관인 거 같습니다. 또한 디자이너들은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1945년 에르메스는 에르메스의 로고인 사륜마차 '깔레쉬'를 법률적 효력을 가진 상표로 등록하였습니다.
이로고 역시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수집한 프랑스의 화가 알프레드 드 드로의 19세기 석판화 '르 뒤끄 아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뒤끄'라는 고급 마차가 마부 석이 빈 채로 묘사가 되었는데 이 그림을 활용한 에르메스의 로고는 에르메스가 고삐를 조정할 고객을 기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역사를 돌아보며
오늘은 간단히 에르메스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에르메스의 시작이 말안장과 마구용품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품의 질로만 전 세계에 많은 제품들이 전시되있는 만국박람회에서 1등을 한 번도 아니고 2번 한 것 자체가
에르메스의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른 타 브랜드와 달리 가족경영체계로 쭉 이어진 것이 오히려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에르메스만의 특유의 분위기와 기술을 그대로 계승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말안장과 마구용품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로고도 말과 연관되어 있다는 게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에르메스 역사를 이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을 통해서 재미있게 보셨던 분들이라면 다음시간에도 무척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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