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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 이야기(2)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5. 18.

 

 

크리스챤 디올 브랜드 로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디올

지난 시간에 크리스챤 디올의 역사 첫 번째 시간을 살펴보았는데요.

디올브랜드의 가방이나 화장품, 향수 제품은 사용해 보셨지만 브랜드의 역사 살펴보는 것은 생소했을 거 같은데요.

오래된 브랜드만큼 길고 긴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디올의 역사이야기 2번째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새로운 디자이너 마르크 보앙의 영입

1961년 이브 생 로랑 디자이너의 후임으로 마르크 보앙이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마르크 보앙은 출판 편집자인 아버지와 모자 디자이너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프랑스 파리 출신의 디자이너로 1945년 로베르 피게에 입사해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고 1953년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부티크를 열었지만 판매부진으로 1회의 컬렉션만 열고 폐점하게 되었습니다.

 

1962년 디올은 첫 네일 라커를 , 1966년에는 첫 남성용 향수인 '오 사비지'를 론칭했습니다.

 

"옷은 만드는 것은 학문과 같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한 마르크 보앙은 안정적으로 크리스챤 디올을 이끌었습니다.

1979년 마르크 보앙은 잘록한 허리, 풍성한 엉덩이를 강조하는 벨벳 소재의 재킷과 튤립형태의 스커트를 선보였고 이는 크리스챤 디올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엄청난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89년까지 크리스챤 디올 수석 디자이너를 가장 오래 맡았습니다.

 

 

 

위기와 극복

크리스챤 디올은 1980년대 경영위기를 맞이하였는데요.

거의 모든 매장이 적자였으며, 매출의 90% 이상이 라이선스에서 나왔습니다.

그나마 크리스챤 디올이 모회사인 부사크에서 조금 상황이 나았는데 그래도 위기가 있기에 부사 크는 

SFFAW라는 지주회사에 인수되었지만 부도상태를 면하지 못했고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까지 1982년에서 1985년까지 재정적 지원을 했지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말에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가 30만 달러를 제시하며 크리스챤 디올 인수에 관심을 보였고 크리스챤 디올 향수의 라이선스 권리를 이미 소유하고 있던 모에 헤네시 그룹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때 SFFAW를 인수한 사람은 현재 LVMH 그룹의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였습니다.

 

이후 베르나르 아르노에 의해 부사크 그룹에 주요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다른 계열사는 매각했습니다.

 

 

 

지안프랑코 페레 영입

1989년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지안프랑코 페레가 마르크 보앙의 후임으로 크리스챤 디올을 맡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출신이 아닌 디자이너가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최초였는데 당시 프랑스 브랜드 디자이너에 다른 나라 출신의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안프랑코 페레는 크리스챤 디올의 역사를 연구하며 컬렉션을 준비하였고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프랑스 패션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안프랑코 페레는 이러한 말을 했는데요 "치마 한 벌을 만드는 것은 구상가 계획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집 한 채를 짓는 것과 같다. 단지 크기와 쓰이는 재료가 다를 뿐이다."

이 때문에 그의 옷은 마치 건축물처럼 '구조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전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존 갈리아노 영입

1996년 크리스챤 디올은 영국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이자 지방시 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했습니다. 

존 갈리아노는 크리스챤 디올에서 첫 번째 작업으로 고 다이애나비 비의 파티복을 제작하였습니다.

이후 여러 유명인들의 의상을 제작하였는데요.

무엇보다 노숙자에게 영감을 받아 드레스에 신문지로 프린트를 새겨 넣는 등 파격적인 컬렉션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가 처음에는 기존의 디올 브랜드를 이용했던 고객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젊은 층의 고객들은 크리스챤 디올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1998년에는 디올 주얼리를 론칭했습니다.

 

2001년에는 젊은 디자이너 에디 슬리만을 영입해 남성복인 디올옴므를 론칭했습니다.

에디 슬리만은 "내 옷을 입고 싶다면 남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기며 슬림핏의 남성복을 선보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디올 옴므는 21세기 남성복의 판도를 뒤집어놓았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이 어린시절을 보낸 그랑빌의 생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음

 

 

 

2005년 크리스챤 디올 론칭 100주년을 맞아 노르망디 그랑빌에 있는 크리스챤 디올의 생가 겸 박물관에서 세계 각국에서 수집해온 크리스챤 디오릐 오드 쿠튀르 드레스와 보석, 패션 사진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크리스챤 디올은 미스 디올 셰리의 이름으로 향수를 전시했습니다.

 

2011년 존 갈리아노가 술에 취해 유대인을 모욕하는 것이 알려져 큰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이 악화되었고 크리스챤 디올은 즉각 존 갈리아노를 해고하게 되었습니다.

 

 

 

라프 시몬스

 

 

라프 시몬스 영입

존 갈리아노가 해고되면서 비어있던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는 존 갈리아노와 함께 일했던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빌 게이튼이 임시로 일하였으나 이후 2014년 당시 질 샌더의 수석 디자이너로 호평을 받고 있던 라프 시몬스가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라프 시몬스는 크리스챤 디올에 입사한 이후 군더더기 없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하여 '바 슈트'를 내놓거나 크리스챤 디올이 좋아했던 꽃을 쇼장 곳곳에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봄/여름 시즌에는 크리스챤 디올이 생전에 갤러리를 운영했던 이력을 주목해 앤디 워홀 시각예술재단과 협업해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품 '슈즈'를 클러치 백에 넣는 등 지속적으로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을 

오마주 하고 있습니다.

 

존 갈리아노가 크리스챤 디올이 연극 무대처럼 화려한 의상이었다면, 현재 라프 시몬스가 이끄는 크리스챤 디올은 간결하고 단순한 디자인 위주로 선보여지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 일하고 라프 시몬스가 그만두게 되면서 발렌티노 출신의 마리아 그라치아 카우리가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그전의 디올과 다르게 새로운 시도로 신선함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예로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아이템 중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티셔츠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카우리는 크리스챤 디올의 최초로 여성 디자이너기도 하며 앞으로 디올을 어떻게 이끌지 다들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디올의 역사를 보며

오늘까지 디올의 역사를 살펴보았는데요. 

디올브랜드는 특히나 다른 브랜드에 비해서 수석 디자이너들이 자주 바뀌는 모습을 보았는데요.

그만큼 정착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디올 브랜드의 정신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부도로 인하여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고 그 당시 디올 브랜드까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면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디올브랜드도 또 디올 브랜드의 제품들도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이죠.

 

다음 이 시간에는 디올 브랜드의 제품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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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크리스챤 디올) / 위키백과(크리스챤 디올) / 패션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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