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이야기

공간을 바꾸는 세계 최대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

0316☆Dreambirt 2023. 7. 5.

세계 최대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 

 

안녕하세요, 토크스탁 입니다. 독자분들은 스웨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오늘 함께 알아볼 기업은요, 스웨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죠. 바로 이케아 입니다. 

 

 

 

잉바르 캄프라드

 

"디자인이 높으면 가격도 높다" "집을 멋지게 꾸미는 것은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라는 통념을 깨트리며 디자인, 기능, 품질, 지속 가능성, 낮은 가격을 모두 잡으며 세계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가 된 이케아에 대해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케아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943년 스웨덴 스몰란드 지방 엘름훌트에 잉바르 캄프라드라는 17살 청소년이 바로 훗날 이케아의 창립자가 됩니다.

잉바르 캄프라드가 살았던 스몰란드 라는 곳은 땅이 척박하여 주민들이 먹고 살려고 애를 쓰는 곳이였다고 하는데요, 캄프라드는 어렸을 때 부터 친척의 도움을 받아 성냥을 여러 갑 산 다음에 이걸 되팔아서 이윤을 남기고 볼펜과 생선을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부터 사업에 재능을 보였던 것 아닐까요?

 

 

이케아의 시작

 

어느 날, 잉바르 캄프라드의 아버지가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하며 용돈을 주었습니다. 과연 이 청년은 용돈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보통의 청소년이라면 맛있는 것을 사먹거나 놀이를 즐겼을텐데 잉바르 캄프라드는 남달랐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용돈으로 시골마을의 작은 창고에서 자기 사업을 시작했죠. 회사명은 본인의 이름 'Ingvar kamprad', 본인이 자란 농장인 'Elmtaryd' 그리고 자란 마을의 이름 'Agunnaryd' 을 따서 "IKEA" 라고 짓습니다. 당시 잉바르 캄프라드는 펜, 액자, 매트 등등 물품에 관계없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물건들을 팔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네가 너무 작아 판매 할 수 있는 시장 자체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사업을 확장하기 쉽지 않았던 잉바르 캄프라드는 고민 끝에 통신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951년 이케아 최초의 우편 카탈로그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죠. 당시 학생인 잉바르 캄프라드가 직접 차를 끌고 다니며 배달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동네 우유 배달 차를 이용해 배송을 시작 했습니다. 우유를 싣고 남는 공간을 이용해 물건을 부쳐달라고 한 것이죠. 이렇게 되면 배달하시는 분은 캄프라드에게 받는 배송비로 인해 소득이 증가하고 캄프라드는 배송비를 아낄 수 있는 서로에게 이득인 방법이였죠. 어떻게 보면 단순한 방법이지만 아무나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래서 사업가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하는걸까요?

 

 

어린 나이임에도 계속하여 새로운 발상을 찾아내었던 잉바르 캄프라드는 1948년부터 가구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가구업체들이 만든 의자와 테이블들을 팔았죠. 하지만 숫자나 알파벳이 나열되어있는 모델명을 전부 외우기 어려웠던 잉바르 캄프라드는 물건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혀주었는데요. 네스나, 루스타, 포앵, 빌리 등 주로 스웨덴에서 쓰이는 이름들이였습니다. 잉바르 캄프라드의 가구 판매 장사는 일가친척들이 일손을 도와줘야 할 정도로 많은 물건들이 팔렸습니다. 그렇게 잉바르 캄프라드는 1951년부터는 가구만 판매하기로 결심했죠. 당시 시대의 상황은 전쟁이 끝난 시기라 공장 등지에서 일하는 서민 중산층 계층이 확대되고 주거 형태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한 집에 거주하는 구성원의 수는 줄고 세대 수가 많아진 것이죠. 이 전에는 '가구'하면 부유한 계층들이 물려받아서 사용하던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생각들이 점차 바뀌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위기와 함께 찾아온 기회 그리고 귀인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잉바르 캄프라드에게 위기와 함께 지금의 이케아를 만들어낸 기회가 함께 찾아옵니다. 과거에 귀족들이 주로 누렸던 가구를 보통 사람들이 더 낮은 가겨에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심한 이케아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바로 타 가구 업체들이였죠. 가구 판매상들이 가구 제조 업체들에 이케아한테 물건을 대주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제조 업체들의 물건을 납품받아 판매하던 이케아에겐 정말 큰 위기였죠.

 

그때 잉바르 캄프라드는 우리만의 자체 디자인으로 가구를 만들어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좌절하거나 속상함에 빠져있기 보단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이케아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죠. 그렇게 잉바르 캄프라드는 디자이너를 고용하는데요, 여기서 이케아의 귀인이 등장합니다.

 

 

일리스 룬드그렌 (Gills Lundgren)

 

 

 

바로 이케아의 네 번째 직원이였던 일리스 룬드그렌 (Gills Lundgren) 입니다.

 

어느 날 일리스 룬드그렌이 이케아의 한 테이블 제품을 차 트렁크에 실으려고 하는데 트렁크에 넣기가 불편하자 다리를 분리하여 싣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1953년 이케아 최초의 조립 탁자인 '막스'가 탄생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분리와 조립까지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탁자였죠. 여기서 나아가 이케아는 가구의 부피의 최소화할 수 있는 플랫팩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플랫팩'은 납장한 상자에 부품을 넣어서 파는 자가 조립용 가구를 뜻하는데요, 이케아가 개발해낸 플랫팩 방식은 가구 업계의 엄청난 혁신이였습니다. 첫 번째 장점은 공장에서 조립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장점은 같은 면적의 창고에 더 많은 양의 가구를 보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운송을 할 때도 더 많이 실어서 보낼 수 있고 이미 조립된 가구를 쌓아서 보내도 되지 않으니 가구 손상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여러 곳에서 비용을 줄인다면 소매가도 더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보았을 때 플랫팩 방식은 가구 업계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일리스 룬드그렌이 디자인한 책장 '빌리'

 

 

일리스 룬드그렌은 전 세계에 수천만 세트 이상이 팔린 책장 '빌리'는 물론 스웨덴 국기를 연상시키는 지금의 엠블럼 디자인까지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무려 여든 살이 될 때 까지 이케아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청춘 뿐만 아니라 인생이 모두 이케아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죠. 여기서 잠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일리스 룬드그렌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 시켜드리겠습니다. 일리스 룬드그렌은 아이디어는 금세 증발하는 것이라며 평소 메모를 남기는 것을 생활화했다고 합니다. 식사를 하던 도중에도 냅킨에 메모를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이미 인정받은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끈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려고 노력했던 일리스 룬드그렌의 태도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일리스 룬드그렌이라는 귀인을 알아보았던 잉바르 캄프라드는 "어느 디자이너든 비싼 책상을 디자인 할 수는 있지만 1/5 가격에 기능까지 좋은 디자인은 아주 훌륭한 디자이너만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는데요, 이는 일리스 룬드그렌이 이케아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인이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주는 발언이었습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이케아

 

 

이후 스칸디나비아에 최대의 가구 매장을 오픈한 이케아는 더 빠르게 성장해 나갔고 스웨덴 가구 업체들의 보이콧이 갈수록 심해지자 해외 생산을 확대했습니다. 해외 생산을 확대하니 가격 경쟁력은 더 좋아졌고 시장 점유율 또한 더 높아져갔습니다. 1963년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1973년에는 스위스에, 이렇게 해외로 매장을 더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케아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을 고용할 뿐만 아니라 가격 낮추기에도 몰두했습니다. 더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고 판매가는 유지하며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원가절감이 아닌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생각해냈죠. 사실 원목으로 가구를 만들면 정말 많은 자투리들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이케아는 이 자투리를 이용해보기로 한 것이죠. 원목 자투리를 모아 압축하여 가구를 만들면 목재 사용량과 가격 모두를 낮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케아는 책임있게 관리된 숲에서 공급된 인증된 목재만 사용하겠다, 패브릭 제품에는 재활용 면을 사용하겠다고 밝히며 재활용 소재의 사용을 늘리겠다고 하는데요, 사실 예전부터 이케아는 재활용 소재들을 활용하여 가구와 소품들을 만들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쇼핑 카트의 철망으로 만든 '모멘트 소파'와 타이어 자투리로 만든 '피스크보 액자' 등이 있죠. 발상의 전환을 통해 버려지는 소재를 이용하여 좋은 제품들을 만들어낸 이케아는 재활용 소재를 이용한다면 가격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의 유연성도 높아지고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말합니다. 사실, 많은 부를 얻으면 얻을수록 더 욕심이 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환경과 소비자를 모두 생각한 이케아의 경영 철학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케아는 2014년에는 한국에 처음 매장을 오픈했고 현재는 국내에 총 4개의 이케아 매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직접 매장에 가지 않고 이케아 홈페이지의 디지털 쇼룸을 통해 가구를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어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죠.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세계 최고의 가구 브랜드가 된 이케아, 훌륭하고 특별한 생활 공간을 소수가 아닌 보통 사람 누구나 누릴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브랜드이기도 한데요. 앞으로 이케아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를 해보며 오늘 글을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토크스탁 블로그에서 더 많은 기업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보세요:)

 

 

 

글, 이미지 출처 : 이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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