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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리뷰

1120☆아리차차 2023. 8. 3.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최승자의 <쓸쓸해서 머나먼>을 리뷰해 보려고 합니다. 99년도 이후로 11년 만에 낸 시집인데요, 시인의 강렬한 언어로 그려낸 세월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출처 - 예스 24

 

시인의 시간 

 
최승자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이 세계의 사랑>은 세계를 가득 채운 죽음, 그 절망과 처절한 고통을 풀어낸 시집이었습니다. 그 문장과 단어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날카로워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언어는 절망만으로 그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을 거름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최승자 시인의 언어적 상상력은 누군가에게나 머물러있는 다수의 상처들이 스스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게끔 만들었죠. 그것이 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인데, 그 힘은 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오롯이 적용됩니다. 
<쓸쓸해서 머나먼>은 최승자 시인이 1999년도 <연인들>을 출간한 이후로 11년 만에 퍼 낸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서는 어떤 시들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오늘 블로그에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 내용 소개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 쓸쓸해서 머나먼 
 
이 시인 시인의 시집에 있는 첫 번째 시입니다. 시인은 첫 번째 시에서부터 어떠한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먼 세계와 이 세계, 시인이 원하는 세계는 삼천갑자동방삭이, 노자와 장자와 예수가 살았던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계가 과연 현실 지점 너머의 세계일지, 그 이전의 세계일지 고민해 볼 수 있죠.
11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그의 세계는 어떻게 변한 것일까요. 시집의 뒤표지에 보면 시인은 "나는 잿빛으로 삭았고 시간과 세계는 무한잿빛으로 가라앉았고 그래서 나는 틈틈이 카페에서 노닥거렸다"라고 말합니다. 시인의 세계는 11년 동안 무한잿빛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이 시집의 첫 번째 시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한 잿빛이던 시인의 세계에 어떤 빛이 과연 찾아왔을까요.

 

 


 
시간이 사각사각
시간이 아삭아삭
시간이 바삭바삭
 
아하 기실은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갈사갈 지나갑니다
-시간이 사각사각 中
 
시간 속에서 시간의 앞뒤에서
흘러가지도 않았고 다만 주저앉아 있었을 뿐
- 보따리장수의 달 中
 
시인의 시간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 무엇도 하지 않기 위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과 세계는 무한 잿빛으로 가라앉았고", 시인은 그 속에서 "흘러가지도 않았고 다만 주저앉아 있습니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이란 그의 고통과 절망의 역사, 그 문명까지도 모두 무너뜨리게 만들어주는 마술사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그의 무엇도 하지 않는 시간은 시집 속에서 '잠'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너는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흩어지는 연기의 잠
 
한 세기가 끝날 무렵에도
너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연기의 잠
 
그동안에 제 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뭐라 뭐라 하는
그러나 우리 두 사람에겐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잠과
흩어지는 연기의 잠뿐이었네
-그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잠'과 '흩어지는 연기의 잠'은 무엇을 하기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흩어지는 것이죠. 누군가의 커다란 역사가, 혹은 나의 커다란 역사가 흔드는 인위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잠으로 표현된 시인의 치유의 시간인 것이지요. 시인의 잠은 그러한 역사,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밀어 넣었던 고통의 시간까지도 잠재우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시인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오랫동안 내 시밭은 황폐했었다'라는 문장을 통해 이전 시들과 지금의 시 사이에 무언가 변화가 있음을 말합니다. 이전 시집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과 절망과 죽음을 파고들었던 시인의 세계가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무한 잿빛이던 세계가 이제야 깨어나는 중인 것이지요. 또한 시인은 이곳에서만 머물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세계를 찾아,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을 꾸준히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쓸쓸해서 머나먼>은 시간에 대한 시집입니다. 이전 시집들과 <쓸쓸해서 머나먼> 사이에 있는 11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시간이 가지는 힘에 대해 시집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시인에게 시간이란 절망적이고, 고통으로 가득 찬, 그러므로 견뎌온, 견뎌야 할 삶의 짐이었다면, <쓸쓸해서 머나먼>은 그 시간을 그저 놓아버림으로써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지요. 그의 시에 자주 나왔던 죽음, 절망, 외로움, 쓸쓸함과 같은 단어로 시를 채우는 대신 여백을 가진 언어들 그 속으로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시집을 펴낸다./ 오랫동안 아팠다./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기분이다/'
시집을 여는 시인의 말에 적혀 있는 문장이, '황홀합니다./ 내가 시집을 쓰고 있다는/ 꿈을 꾸고 있는 중입니다.(p.85 바가지 이야기)' 끝이 납니다. 시집이 끝나기 직전의 시에는 이렇게 적혀있지요. '참 우습다/내가 57세라니/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여한다니'
시인은 어느새 황홀한 시간 속에서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웃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시인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그에게 분명히 시간을 놓아버리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시인이 싸웠던 고통의 시간 속에서 시인은, 스스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시인은 그 시간 동안 스스로 치유받았습니다. 절망과 죽음,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통쾌한 문장으로 우리를 구원하던 시인은 그 삶의 끝을 바라본 후 그 끝이 긍정이라고 말해주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한 번 더 최승자 시인에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최승자 시인에게 사랑은 여태 칼날을 손에 쥐는 것, 내 숨통을 트이게 함과 동시에 나를 상처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불행의 정서로 세상을 바라보던 최승자 시인은 지금 이 시집에서 사랑의 한 종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자신을 저울질합니다. 남과 자신읠 비교하고, 남의 기주에 맞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시간을 버렸다는 것은, 곧 실패한 삶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는 11년 만에 출간된 이 시집이, 그리고 시인이 가진 시간을 놓아버리는 힘도 때때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집이 시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각자 개인의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도 도움되는 책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구독하시고 좋은 정보 많이 얻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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