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이야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 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4. 22.

 

구찌 브랜드 로고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구찌

구찌 GUCCI 라는 브랜드 들어보셨나요?

가방, 신발, 선글라스, 시계등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명품 브랜드 하면 구찌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며 많은 사람들이 구찌의 제품을 이용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카이, 아이유 그리고 배우로는 이정재, 신민아가 구찌의 앰버서더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찌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고 어떤 흐름으로 발전되어 왔는지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구찌와 아들인 로돌프 구찌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명품 브랜드 구찌의 탄생

구찌의 창업자 이름을 아시나요?

바로 구찌오 구찌이십니다. 구찌오 구찌는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밀짚모자를 만드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 구찌오 구찌는 밀짚모자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라 생각하고 1897년 당시 전 세계의 부호들이 모이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로 갔습니다.

구찌오 구찌는 이곳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귀족과 상류층의 기호 및 문화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깊은 인상을 받은 구찌오 구찌는 1902년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가 프란 지라는 이름의 가죽 제조업체에서 가죽 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921년, 구찌오 구찌는 피렌체에 있는 비냐 누오바 거리에 '구찌'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열었고 연이어 같은 해에 빠리오네 거리에 두 번째 매장을 내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초창기에 구찌는 구찌오 구찌가 사보이 호텔에서 근무하며 접했던 영국귀족의 스타일에, 섬세한 가죽 가공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장인 기술을 결합하여 장간 및 부츠와 같은 승마 용품을 중심으로 한 가죽 제품을 주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찌' GUCCI 브랜드의 시작이었습니다.

 

 

구찌 위기를 기회로

구찌의 초창기에 구찌오 구찌가 생산한 승마용품은 승마를 스포츠로 즐기는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마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져 다양한 제품라인을 개발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겨났습니다.

1937년 구찌오 구찌는 작업장을 활용하여 핸드백, 트렁크, 장갑, 신발, 벨트 등 생산제품의 종류를 늘리기 시작했다. 

 

특히 승마용품인 호스빗과 등자를 활용하여 가죽용품에 장식하는 것은 구찌의 고유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1940년대 구찌오 구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말기위기 가운데도 현명하게 극복을 하였습니다.

모든 물자가 전쟁에 동원되어 소재가 부족했던 시기에, 아버지 구찌오 구찌의 사업을 돕고 있었던 첫째 아들 알도 구찌는 대마, 삼마, 황마, 대나무등의 재표를 대체품을 소재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내었습니다.

 

알도구찌는 이탈리아 나폴리 산 대마와 삼마를 이용하여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서로 연결되는 형태로 직조하고 이를 여행 가방에 활용하였습니다. 

이로써 탄생한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디아만테 캔버스로 , 구찌의 첫 시그니처 프린트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구찌는 매장 확장에 힘을 쏟았습니다. 1938년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이자 많은 부자들의 쇼핑의 중심지였던 로마 콘도티 거리에 새로운 구찌 매장을 열었습니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패전국인 이탈리아의 물자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알도 구찌는 이때에 일반적인 가죽 대신 되지 피혁(스웨이드처럼 가볍고 부드러움)을 활용하는 대안을 찾았습니다.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전쟁 후의 물자 위기는 구찌라는 브랜드를 더욱 단단하게 해 주고 구찌에서 유명한 뱀부백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찌 GUCCI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다 

구찌오 구찌는 자신의 세 아들 알도 구찌, 바스코 구찌, 로돌프 구찌를 회사의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시켰습니다.

1951년 로돌프 구찌는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 거리에 구찌 매장을 열었고, 2년 후엔 알도구찌가 뉴욕 58번가 사보이플라자 호텔에 구찌 매장을 열었습니다.

 

이로써 구찌는 뉴욕에 진출한 '최초의 이탈리아 브랜드'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53년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난 뒤, 첫째 아들인 알도구찌와 셋째 아들인 로돌프 구찌가 각각 50%씩 경영권을 나누었습니다. 

알도 구찌는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으로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1961년에 아버지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CG 로고를 만들게 되고 이를 캔버스 소재로 활용하여 가방, 액세서리, 옷에 사용하였으며 같은 해에 재키 백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알도 구찌는 1961년 팜비치, 1968년에 비버리 힐즈를 비롯하여 도쿄와 홍콩에도 구찌매장을 내어 구찌가 구찌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했습니다.

 

구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5년에는 향수를 론칭하였고 1981년에는 피렌체에서 첫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고 구찌의 상징 중 하나인 플로라 프린트로 만든 옷이 다수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구찌 스토어 전경 모습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구찌 전문 경영인 체제

1982년, 구찌는 가족 경영진의 결정을 통해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과정을 맡아 경영하는 SPA로 전환하고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년 뒤 로돌프 구찌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아들인 마우리초 구찌가 경영권을 승계하였습니다.

이에 알도구찌의 아들인 파울로 구찌가 반발하여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으로 핸드백, 액세서리, 와인 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구찌 이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구찌의 재정난도 심해졌습니다.

 

마우리초 구찌는 구찌의 옛 명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는 1989년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뉴욕 지사장을 구찌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했습니다.

돈 멜로는 구찌에 새로운 디자인 팀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훗날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당시 29세의 디자이너 톰 포드도 구찌 디자인 팀에 합류하였습니다.

또한 마우리초 구찌는 이탈리아 출신의 변호사였던 도메니코 데 솔레를 구찌 아메리카 사장 겸 관리이사로 영입했습니다.

 

이로써 구찌에 가족경영인이 아닌 전문 경영인으로 운영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의 구찌 GUCCI 

1987년 투자 회사 인베스트코프는 구찌의 지붕을 인수했습니다. 1989년에는 구찌 주식의 50%를 매입했고

1993년에는 마우리초 구찌가 자신이 보유한 50% 주식 지분을 매각하면서 인베스트 코프가 구찌 회사의 전체 지분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구찌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1995년 돈멜로는 구찌를 떠나 백화점의 회장으로 돌아가며, 도메니코 데 솔레가 CEO가 되었습니다.

 

톰 포드는 구찌 컬렉션, 선글라스, 향수, 광고, 매장등 모든 외양을 책임지는 크리에티브 디렉터가 되었습니다. 1995년에 선보인 구찌의 젯셋 글래머 테마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구찌의 옛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게 되며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부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톰 포드가 매장과 광고이미지까지 감독하면서 구찌의 새로운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구찌의 변화는 성공적이었으며, 1998년 유럽 언론협회는 구찌를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하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에 구찌는 구찌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PPR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습니다.

 

2004년 톰포드와 도메니코 데 솔레가 재계약에 대한 PPR그룹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이에 남성복 디자인의 존레이, 여성복 디자인의 알렉산드라 파치네티, 액세서리 라인의 프리다 지아니니로 구성된 3인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시장전문회사인 닐슨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구찌 GUCCI 회사에 대하여

구찌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고 구찌라는 기업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보았는데요.

 

구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재료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거기서 생각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부족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발전적 생각으로 극복하고 

 

또한 가족경영으로 운영을 하였지만, 전문경영인들을 영입하면서 구찌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제2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오늘 간단히 구찌 회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다음시간에는 구찌의 대표 제품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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