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리뷰 해 볼 작품은 이희주 작가의 장편소설, 환상통입니다. 여러분은 덕질을 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마 덕질을 해 보셨다면, 오늘 이 작품이 더욱더 흥미롭게 다가올 텐데요, 팬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은 환상통,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의 기록
<환상통> 은 제 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입니다.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많은 아이돌 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지요. 세세하고 현실적인 덕질 문화가 잘 나와있어 더 많은 아이돌 팬들의 관심과 공감을 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이돌 팬인 m과 만옥, 또 그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소설은 진행됩니다. '빠순이'라는 단어로 좋지 못한 시선을 받기도 하는 아이돌 팬들의 입장과 시선, 목소리로 이루어진 특별한 이야기예요. 한계가 없는 사랑을 생생한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줄거리 (*스포주의*)
앞서 말했듯이, 소설의 큰 줄거리는 아이돌 N그룹의 민규라는 가수의 팬인 m과 만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1부와 2부에서는 m과 만옥의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에 대해 나옵니다. m은 자신이 민규를 보고, 민규를 응원하고, 민규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을 전부 기록해 놓는 사람입니다. 생생한 문장으로 그 순간순간의 장면과 기분을 모두 기록해 놓죠. 하지만 그럴수록 m은 외로움을 느끼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애 소설을 읽습니다. 그래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더 커져만 가지요. 팬과 아이돌의 관계는 연애가 허용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에 가까웠으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전혀 관계를 맺을 수도,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없는 특이한 사이라는 것을 깨닫고 m은 커다란 고독을 맛봅니다.
"너의 일생을 사랑하는 걸 취미로 삼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너의 병이 된 적은 없었따. 어느 날 고통에 못 이긴 듯 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아. 병이야. 너의 병이 나만은 비껴갔다. 나는 이것이 두고두고 서운했다.
2부에서 등장하는 만옥은, m이 공개방송을 기다리는 도중에 만나 친해지게 된 덕질 친구입니다. m이 모든 순간과 감정을 객관화하고 문장으로 기록해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만옥은 그 순간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인물입니다. m처럼 따로 기록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오롯이 체험에 집중하는 인물이지요. 민규가 먹고 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짜장면 빈 그릇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무대 위에서 민규의 옆에 있는 걸그룹에게 욕설을 내뱉기도 합니다. 만옥은 이렇듯 격렬하게 사랑에 집중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만옥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고생하며 민규를 기다려도 민규와의 거리는 너무 멀어 손 한 번 닿을 수도 없다는 걸요.
"방송국 앞에서, 사람들이 경멸에 찬 눈으로 보거나 욕을 하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평생 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 할 거야, 하구요."
"나는 그 미소가 좋다. 정말 좋아서 열 번 중 열 번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만옥을 좋아했던 남자가 만옥의 죽음 이후, m을 만나 만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 남자는 만옥이 그렇게 아이돌을 좋아하고 따라다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몰랐던 만옥을 알기 위해 m을 찾아가죠.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사랑에 빠진 만옥의 모습들. 누구보다 행복하고 황홀해 보였던 만옥의 모습들과 만옥의 열정적이고 격렬한 사랑을 m을 통해 듣게 됩니다. 우연찮게 그 남자의 이름도 민규이지요. 만옥과 m이 사랑했던 아이돌의 이름과 같습니다. 아이돌이 아닌 민규는, 만옥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아이돌 민규의 팬 사인회에 갑니다. 그리고 이름을 만옥으로 적어달라고 부탁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소설에는 복잡한 줄거리나, 어려운 내용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구어체로 쓰여있어 몰입도나 흡입력이 좋고, 어렵지 않아 금방 읽을 수도 있지요. 이 소설이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표현력 때문 같습니다. 사랑을 이렇게나 다양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니, 어딘가 끔찍하고, 너무나 격렬해서 읽는 내내 새로운 사랑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덕질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몇몇 사람들은 덕질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지독한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또 다른 사랑의 모양을 알 수 있어서 좋았던 소설입니다. 물론 과한 덕질은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설을 통해 덕질이 의미 없다고만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덕질을 통해 내 안에 숨어있는 사랑을 발견하는 것, 내가 이렇게 열렬하고 강한 사랑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해 주는 것,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 그런 마음들이 잘 묘사되어 있어 공감이 많이 되기도 했던 소설입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할 때면 나는 농담처럼 이 말을 만옥에게 던지곤 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때 기다리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게 된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책의 끝 부분에는 심사평과 함께 소설 평론가들이 덧붙인 말들도 함께 적혀있는데요, 그중에 이 소설을 잘 보여주는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말과 정한아 소설가의 말의 일부분을 들고 왔습니다.
"계속해서 기다리고 기다림 끝에 간신히 스쳐가듯 만나지만 어떤 사건도 만들어지지 않는 사랑, 상대에게 자신은 늘 하늘에 떠 있으나 아무 흔적 없이 흘러가고 흩어져버리는 구름만큼 흐릿한 존재라는 것만을 확인하는 사랑, 그래서 사랑하는 일이 어딘가 자학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촘촘히 그리는 이 작품을 덫에 빠지듯 사랑에 빠져 몸부림치는 순도 높은 고백의 소설들."
- 강지희 문학평론가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이라니, 다소간의 거리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다 어느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아마,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기를 망설임 없이 '사랑'이라 부르는 작가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이 정말 사랑이라 믿게 되었다. 실재인가 따위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도리어 그 대상은 사랑받음으로 인해 실재가 된다. 만옥이 아이돌 민규를 볼 때마다 내뱉은 주문과 같은 말, '씨발, 죽어도 좋아.' 그 문장이 나를 칼처럼 헤집은 이후, 나는 줄곧 이 소설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광기는 이토록 매혹적이다."
- 정한나 소설가
어떤가요? 이 소설이 얼마나 매혹적인 광기를 말하고 있는지 감이 오시나요? 새로운 사랑의 모양을 알고 싶은 분들이나, 지금 누군가를 열렬히 짝사랑하고 있는 모든 팬 분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드립니다. 사랑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는 환상통, 재밌으니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그럼 저희는 다음 시간에도 더 재밌고 좋은 책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구독하시고 좋은 정보 많이 얻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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