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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리뷰

1120☆아리차차 2023. 8. 25.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처음으로 시집을 리뷰해 보려고 합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입니다. 이 시집은 출간 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청혼'이라는 시가 수록된 시집인데요,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자리 잡고 있는 시집이니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 출처 - 예스 24

기꺼이 다시 사랑할 용기

 
 진은영 시인은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이후 많은 시집을 선보였습니다. 감각적인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는 많은 많은 사람들이 진은영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죠.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난 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단어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시집은 밝고 행복한 사랑만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죠. 오히려 슬프고 절망하는 이야기들도 많은데요, 하지만 슬프고 절망하는 이유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 또 그런 슬픔과 절망을 치유해 주는 것도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지요. 


 
시집의 1부 제목은 <사랑의 전문가>입니다. 그 아래에는 존 버거의 말을 인용하고 있죠.  '나는 당신에게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말들을 찾고 있어요'. 아마 사랑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와 크기, 형태가 모두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 그럴 수만 있다면,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것 같은데요, 시집 속에서 그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를 골라봤습니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 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 <청혼>, 진은영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입니다. 청혼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자 고백이죠. 그런 마을을 전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어지럽게 뒤섞인 감정들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시 속 화자는 자기 자신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마저도 상대에게 모두 주겠노라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화자도, 혹은 시인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덮을 수는 없다는 것을요. 사랑이 나의 슬픔을 모두 상쇄해 주지는 못하지만, 나의 슬픔을 그리고 사랑하는 상대방의 슬픔을 나눠 마심으로써 우리는 그 마음까지도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로의 슬픔과 분노, 외로움.... 그런 것들까지도 기꺼이 나눠가지며 옆에 머물고 싶은 마음, 청혼입니다. 시인만의 언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죠. 
 저는 이 시가 결혼 할 상대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나의 옆에 항상 있어야 하는, 있을 사람인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요. 여러분은 이 시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1부의 제목과 같은 <사랑의 전문가>라는 시에서 화자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크게 공감이 되었어요. 모든 사랑은 마법처럼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어쩌면, 마법에 걸린 우리의 모습에 중독된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는 '영원히' 마법에 빠진 채 살아갈 것이다. 누구를, 혹은 무엇을 사랑하든 우리는 그 마음으로 평생 살아갈 것입니다. 
 
2부에서는 슬픈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있을 세월호 관련 시 들이 눈에 띄지요.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휴대폰 충전 안 해 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 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와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뜻하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뭉게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빛 해가 저물어
 
(중략)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 줘 고마워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 줘 고마워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날 이후>, 진은영
 

 읽기만 해도 가슴이 찡하게 슬픔이 몰려오는 시인데요, 시집 속에는 예은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시인은 직접 예은이의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예은이에 대해 알아갔다고 해요.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더욱더 슬프고 고통스러운 시들이죠. 그런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치유해 주기 위해 시인은 시를 남긴 것이 아닐까요. 슬퍼하는 사람들을 언어라는 방식으로 위로해 주는 것이죠. 이 시는 화자인 예은이 뿐만 아니라 예은이의 가족들까지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나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또 우리 예은이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사랑해 달라고 말이죠. 


 
 시집은 이렇듯 사랑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은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지요. 너무 많은 예술가들이 다뤄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여전히 사랑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류는 사랑 때문에 진화했고, 생존했기  때문입니다. 시집 속에 시는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시집의 마지막 시인 <빨간 네 잎클로버 들판>은 사랑을 말하는 시집의 마지막 시라고는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이지요. 시 속 문장처럼 '매일매일 자살하는 것만 같은 이 세계에서 자꾸만 멈춰서 날 슬프게 만드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괴로운 이유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말은 즉, 우리에게는 또다시 사랑을 할 용기와 힘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은영 시인은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이 시집은 저항도, 치유도 모두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 고백으로 시작한 시집이 절망을 말하며 끝난 것은 독자인 우리에게 다시 시작될 사랑의 몫을  남겨놓은 것이죠. 저는 이러한 시인의 시선이 좋고, 사랑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시집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시는 분들도 이번 블로그를 보시고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를 이해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속에 숨어있는 사랑을 찾고 싶으신 모든 분들께 이 시집을 추천합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도 좋고 재미난 책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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