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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름의 빌라> 리뷰

1120☆아리차차 2023. 8. 25.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금 계절과 잘 어울리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소설 단편집 <여름의 빌라> 리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잔잔하지만 세심하게 전해주는 인생의 여름을 함께 만나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 출처 - 예스 24

 

비로소, 기어코 나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는 이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백수린 작가는 누구보다 기민하게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고, 균열을 직시합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등을 출간하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백수린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역시나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운 문장을 보여 줍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문지 문학상 수상작인 <여름의 빌라>,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고요한 사건>과 <시간의 궤적>을 포함해 8편의 단편을 담고 있지요.
 이 책은 2021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상을 받은 만큼 우리의 일상에 생기는 작은 균열을 포착하여, 우리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으니 함께 펼쳐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중 몇 편을 뽑아 줄거리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줄거리 소개 (*스포주의*)

 

 
첫 번째는 <시간의 궤적>입니다. 프랑스 어학원에 다니는 '나'는, 그 학원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한 한국인이던 언니와 친해집니다. 언니는 대기업의 주재원이었고, 비 내리는 날 함께 술 한잔을 하는 것으로 친해지게 되지요. 언니는 '나'에게 주재원의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주재원이 되고 싶다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끝내 이별을 말한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요, 가끔 이제는 유부남이 되어버린 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혼자 울기도 한다고 말하죠. '나'는 그런 언니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언니가 더 좋아져 버립니다. 자신의 첫사랑 얘기도 터 놓으며 둘은 더 가까워지죠. 
 

"외꺼풀의 커다란 눈과 짙은 눈썹을 지닌 언니는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묘한 분위기의 매력을 풍겼고, 목소리의 톤이 높지만 성량은 작아 말을 하면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언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웃으면서 박수를 치다가 입을 가렸고, 그럴 때는 수줍어 보였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들을 때면 수줍음과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 <시간의 궤적> 中

 
 '나'는 프랑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사귀게 된 브리스와 함께 살게 됩니다. 학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다가올수록 체류가 끝나는 시점이 다가오고, 브리스는 '나'의 체류를 연장하길 원하죠. 이런 과정에서 브리스와 종종 다툼을 합니다.
 

"우리는 전부를 걸고 낯선 나라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 만큼 용기를 내본 적 있는 사람들이니까. 걱정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걸 찾을 줄 아는 사람이야."
- <시간의 궤적> 中
 

하지만 언니의 말에 용기를 얻어 브리스와 결혼을 마음먹는데요, 결혼으로 기쁜 것도 잠시 언니의 체류 만료가 다가오죠. 화자는 프랑스라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 혼자 남겨진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이 불안감으로 결국 언니와 나 사이는 약간씩 멀어져 가죠. 언니가 한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브리스까지 셋이서 떠난 여행에서, '나'는 전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언니에게 "그건 나쁜 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둘은 아무렇지 않은 척 헤어지지만 그 뒤로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문득문득 떠오르는 언니의 생각에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을 느낍니다.  
 
 가까운 사람과 멀어지고, 예전과 같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일은 슬프게도 자연스럽습니다. 어떠한 큰 계기없이 변하는 감정은, 감정의 주체인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죠. 친했던 만큼 서운한 일은 크게 느껴져서, 상대에게 상처되는 말을 내뱉고는 합니다. 그렇게 멀어진 상대와의 관계 속에는 늘 아쉬운 마음이나 후회가 남죠.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세심하게 포착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에게서 멀어진 관계들이 떠오르기도 하죠. 
 



다음으로는 <흑설탕 캔디>입니다. 주인공이 할머니의 일기장을 읽으며 알게 된 할머니의 인생과, 사랑에 대해 쓴 이야기인데요,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한 항구 도시에서 규모가 큰 양장점을 하시던 부모님 덕분에 부유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갔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음악을 전공하셨죠.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는 대학을 그만 다녀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 당시 한국의 여성들과는 달리 일본어에도 능숙하고, '에델바이스'를 영어로도 부를 줄 알았어요.
 

"한 번은 아버지가 무료해 하는 할머니를 위해 주재원 부인들의 모임을 알아 오기도 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서로를 초대하던 그 모임의 젊은 주재원 부인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지나치게 예의가 발랐고, 할머니는 그들에게 자신이 그저 대하기 어려운 노인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처음엔 곧 녹을 수 있을 듯 얇은 막으로, 하지만 이내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층을 이루었겠지."
- <흑설탕 캔디> 中

 
할머니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동생을 돌보기 위해 프랑스로 떠납니다. 손주들이 자라 더이상 예전만큼 할머니를 찾지 않게 되면서 할머니는 외로움을 느끼지요. 낯선 땅에서 제대로 말이 통하는 사람도 없고, 너무 다른 문화에 점점 더 외로워지는 찰나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만납니다. 이웃집 노인 브뤼니에 씨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같이 음악을 들으며 친해지죠.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차를 마시면서 그들은 사전을 사이에 두고 더듬더듬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관사나 전치사, 부사 같은 것은 생략한 채 동사와 명사, 이따금 형용사 한두 개로 이어지는 대화들. 사전을 사이에 둔 대화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주고받는 동사는 시제 없이 원형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데, 어느 날 문득 할머니는 동사를 사전에서 찾다가 삭제된 시제들이 대부분 과거형이며 할머니에게 미래형 동사를 써서 표현할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 <흑설탕 캔디> 中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사전으로 어렵게 대화하며 둘은 가까워집니다. 함께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클래식을 듣기도 하며 연인으로 지내다가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헤어지죠. 
소설은 낯선 나라에 던져진 할머니의 외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나이와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 우정과 사랑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브뤼니에 씨는 각설탕으로 탑을 쌓습니다. 언어가 서로 통하질 않아 할머니는 각설탕을 처음 먹었던 순간의 기분을 전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데요, 그래도 함께 탑을 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퇴화하는 것은 육체 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 <흑설탕 캔디> 中

 
 소설은 이렇듯 세심한 시선으로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여름의 축축하고 습한 공기가 떠오르는 이야기들이죠. 책을 덮고 나면 긴 여운이 남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희는 다음 시간에도 좋고 재밌는 책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블로그 구독하시고 좋은 정보 많이 얻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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