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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리뷰>

1120☆아리차차 2023. 10. 4.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 김민정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리뷰해 보려고 합니다. 

 

 

고통 속에서 고통을 말하며, 고통을 전달하다


 

김민정 시인은 1999년 문예중앙에 신인문학상 시로 등단하였습니다. 2000년대 등장한 젊은 시인들은 2005년 이후 미래파로 불렸습니다. ‘미래파’로 일컬어지는 젊은 시인들의 시는 난해하고 독자와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김민정 시인의 파격적이고 낯선 문장과 형식에만 집중하여 작품 속 여성으로서의 주체성, 젠더 문제는 배제되어 다루어졌습니다. 지금은 미래파의 대표적 시인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김민정 시인의 시는 번뜩이는 상상력과 기존 통념을 무시한 시인만의 문장으로 세계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시들이 장면이 너무 거침이 없어 읽으면서 가끔 놀라기도 했는데요. 여러분들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의 시 두 편과, 간략한 내용 소개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 내용 소개 


 

김민정의 시 속에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그녀가 다루는 현실이란 여전히 여성을 둘러싼 권력관계와 폭력 상황을 말합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여성을 향한 폭력의 현실을 드러내며 시 속에서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은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상징적 복수의 대항방식을 찾아 그것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황색 플라스틱에 까만 글씨를 판 이름표를 달고 나는 매일매일 학교에 간다 비 맞은 구두가 아직 덜 말랐는데 나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엄마는 송곳처럼 뾰족뾰족 깎은 세 자루의 연필과 면도칼을 세워 내 호주머니 속에 넣어준다 가다가다 어김없이 가나안 정육점 앞에서 외팔이 소년을 만난다 외팔이 소년은 제 한 팔을 갈아먹은 고기 써는 기계에 내 한 다리를 쑤셔 넣고는 오늘도 영구 흉내를 내보인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바람이 외팔이 소년의 손 없는 팔에 퉁퉁 불린 소매를 달아준다 똑같지? 아니 아니 하나도 안 똑같애 외팔이 소년은 불어난 소매 끝에 갈고리를 끼워 내 목둘레를 둘러 긋기 시작한다 똑같은 거야, 알았어? 덜렁덜렁해진 모가지로 끄덕끄덕하며 나는 호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 외팔이 소년의 혀를 꾸욱 하고 찍어버린다 구멍 난 혀를 면도칼로 짤라 신주머니에 넣으며 나는 매일매일 학교에 간다

- 나는 안 닮고 나를 닮은 검은 나나들 _ 중

 

 위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일매일’, ‘어김없이’, ‘오늘도’라는 시어는 소녀가 당하는 폭력이 일시적이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등하굣길과 학교 내에서 매번 마주해야 하는 ‘폭력의 일상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에는 마침표와 쉼표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는 사건의 연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소녀는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시인의 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자 고발이지만, 단편적으로 이를 폭로만 하는 것이 아닌 여성 화자의 주체성을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긴밀하게 연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시인은 화자의 시선을 한 곳에만 두지 않고 시선의 이동을 두어 익살적인 부분을 넣고 있습니다. 이는 상황에 맞지 않고 부조화스럽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고통 속에만 머물지 않고, 지배되지 않으려는 심리적인 대처처럼 보입니다. 이를 통해 시 속의, 시 바깥의 여성들의 상처를 보호하는 것이지요.

 

 

 

 

줄이 돌아간다 줄 돌리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잘도 도는 줄이 허공을 휘가르며 양배추의 뻑뻑한 살결을 잘도 썰어댄다 나 혼자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두 살 먹은 내가 개똥 주워 먹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다섯 살 먹은 내가 아빠 밥그릇에다 보리차 같은 오줌 질질 싸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아홉 살 먹은 내가 팬티 벗긴 손모가지 꽉 물어뜯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세 살 먹은 내가 빨아줘 빨아주라 제 자지를 꺼내 흔드는 복순이 할아버지한테 침 퉤 뱉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여덟 살 먹은 내가 본드 불고 토악질 대는 친구의 뜨끈뜨끈한 녹색 위액 교복 치마로 닦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열아홉 살 먹은 내가 국어 선생이 두 주먹에 날려버린 금 씌운 어금니 두 대 찾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두 살 먹은 내가 두 번째 애 떼러 간 동생 대신 산부인과에서 다리 벌리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다섯 살 먹은 내가 나를 걷어찬 애인과 애인의 그 애인과 셋이서 나란히 엘리베이터 타 오르다 말고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스물여덟 살 먹은 나 혼자 폴짝 줄 넘고 있었는데 줄 돌리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잘도 도는 줄이 돌고 돌수록 썰면 썰수록 풍성해지는 양배추처럼 도마 위로 넘쳐나는 쭈글쭈글한 내 그림자들이 겹겹이 엉킨 발로 폴 짝 폴 짝 줄 넘어가며 입속의 혀 쭉쭉 뽑아 길고 더 길게 줄을 잇대 나간다

-  나는야 폴짝 전문

 

 

시인은 이렇듯 시 속의 화자를 무겁게 그리지 않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2부의 첫 시, <나는야 폴짝>을 보면, 시적 화자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연속되는 폭력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줄을 어김없이 폴짝 뛰어넘습니다. 줄을 넘어도 불행한 사건은 연달아 일어나지만 시적 화자는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줄을 넘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시뿐만이 아니라 시인의 시 속에서는 시적 여성화자를 무겁지 않게 그리기 위한 의성어와 의태어, 유머적인 부분을 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시인은 시집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몸을 다양한 시선으로 해체하고, 해방시킵니다. 또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의 쾌락을 강조하여 사회적인 통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던 여성의 성적욕망을 해방시키기도 합니다.

 

시인은 폭력 속에 고통받은 피해자를 또다시 고통 속에 몰아넣지 않도록, 여성의 몸이 또다시 찬미적인 대상으로 보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시 속의 젠더 폭력의 고발뿐만 아니라 여성 육체의 해방과 여성 성적 욕망의 긍정태도 등 여성의 주체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민정 시인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는 이처럼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를 읽다보면 묘하게 느껴지는 해방감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구매처 >> 알라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aladin.co.kr)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www.aladin.co.kr

저는 다음 시간에도 유익한 책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 블로그 구독하시고 좋은 정보 많이 얻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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